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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전사지 삼층석탑
화려한 석탑의 속내
양양군 진전사지에 남아있는 불탑으로 통일신라시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1966년 국보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정확한 연도는 기록된 것이 없으나 진전사는 우리나라에 선불교를 전한 도의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탑의 높이는 약 5m이며 탑의 각 층에는 우주, 탱주, 천인좌상 등이 조각되어 있다. 석탑은 뛰어난 균형미를 갖추고 있고 하층기단에서부터 차례로 새겨진 비천상, 팔부신중, 사방불 조각이 눈에 띄는데 이는 화려했던 진전사의 모습을 반영한 것으로 추측된다.
화려한 석탑의 속내
섬세하고 화려한 석탑의 조각들이 저마다 할 얘기가 많은 듯 생생히 살아 있다. 양쪽 팔과 무릎에 걸쳐 법의를 덮고, 가슴 앞에 있는 왼손으로 약합을 들고 있는 약사여래상은 금방이라도 극락세계가 어디인지 알려줄 것 같다. 문헌의 기록이 극히 적어 그 정체가 더 궁금한 둔전리의 진전사.도의선사의 가르침이 시작된 곳이라는 것 외에는 알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 그나마 절터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삼층석탑. 이곳을 오간 승려들의 얼굴과, 이곳에서 쓰인 불교의 역사를 삼층석탑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도도하게 서 있다.
강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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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전사지 도의선사탑
선불교의 종조
진전사지에 남아 있는 보물 제439호의 승탑으로 2층 기단 위에 1석을 놓고 8각 탑신석과 옥개석을 쌓은 형태이다. 높이는 약 3m이며 현재의 모습은 무너져 있던 것을 1968년 다시 세운 것이다. 이 승탑은 진전사지를 창건하고 당나라에서 선종을 공부하고 돌아와 이곳에서 입적한 도의선사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형태와 여러 가지 면에서 건립된 연대를 9세기 중반으로 추측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석조부도탑의 시원이 되는 가장 오래된 부도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
선불교의 종조
신라시대 한 승려가 큰마음을 먹고 당나라로 떠났다. 어떤 답을 찾아 그 먼 길에 나섰는지는 모르겠으나 30년 뒤쯤 다시 나타난 승려는 겉모습도 마음가짐도 달라져있었다. 양양의 진전사로 돌아온 승려는 참선으로 부처님의 뜻을 헤아리는 새로운 수행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경전과 불경으로만 부처를 모시던 승려들에게 참선을 통한 깨달음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파격적인 행태였다. 하지만 지금, 그 승려의 가르침은 조계종이란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고, 선불교를 최초로 도입했다 하여 도의선사는 종조로까지 모셔지고 있다. 용기와 노력으로 새 길을 찾고 그 뜻을 전파하는데 힘썼던 도의선사.그의 마지막 모습을 진전사지 도의선사탑에서 만날 수 있다.
강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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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전사지
상상으로 만나는 절
설악 끝자락에 있는 진전사는 창건 및 폐사에 대한 기록이 없어 내력 추측이 불가한 절이다. 다만 821년(헌덕왕 13) 도의선사가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경전보다 참선을 위주로 수행하는 선불교를 신라 최초로 전래한 곳이며,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선사가 출가하여 구족계(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 할 계율)를 받은 곳이라 한다. 1960년대 이전까지는 ‘둔전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왔으나 1975년 조사 당시 ‘진전’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진전사라는 이름을 찾게 되었다. 현재 진전사지에는 삼층석탑과 도의선사묘탑, 진전사지 부도가 남아 있다.
상상으로 만나는 절
설악에 스며있는 고대의 사찰.빼어난 자연과 어우러져 기품이 넘치던 사찰은 이제 그 흔적만이 아련하게 남아있다. 한국 종교사에 큰 획을 그으며 지금까지도 놀라움을 선물하는 신라시대의 불교. 그 화려했던 기상은 진전사지에 남은 몇 개의 탑에 서려있고, 찬란했던 전성기는 고승들의 이야기로만 짐작할 수 있다. 설악의 끝자락.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는 공허한 빈터. 새들의 낚시터인 둔전저수지 옆을 걷다 보면 상상으로만 만날 수 있는 진전사지가 기다리고 있다.
강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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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향교
배움을 향한 걸음
고려 충혜왕 때 이곳이 옛 학교의 터였음을 알게 되어 향교 건립지로 선정하였고, 정랑과 현유의 위패를 봉안하여 지방민들의 교육 장소로 창건된 곳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국보급 서화와 조각 등의 유물을 보존하고 있었으나 6.25전쟁 당시 화재로 소실되었고, 이후 1952년, 1953년, 1990년 등 꾸준한 중건과 보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약 5km 인근에 남대천과 양양송이밸리 자연휴양림이 있으니, 당일 관광코스로 함께 돌아보기 좋다.
배움을 향한 걸음
붉은 홍살문 뒤로 깔끔한 돌계단이 나를 기다린다.정성을 들여 쓸고 닦아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어제 깎은 것처럼 반듯하고 깨끗하다. 정갈한 마음과 몸가짐으로 계단을 한 칸씩 오르며 가르침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저 위에서 기다리고 있을 스승을 떠올려보니,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게 된다. 지금의 학교와 너무도 다른 풍경. 어쩐지 몸가짐을 바르게 하게 되는 향교는 옛 가르침의 터전이자 지역의 자존심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높은 언덕 위, 가지런한 돌담으로 지켜지고 있는 고즈넉한 양양의 향교. 여기에 고이 모셔진 위패까지 만나게 되면 더욱 정숙하게 된다. 스승의 그림자까지 존경하며 배움에 몰두했을 학생들과 나라를 위한 인재 육성에 최선을 다했을 스승들. 향교를 뒤로하고 돌계단을 하나씩 내려오며, 과거부터 이어진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우쳐본다.
양양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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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령 옛길
용이 선택한 길
양양에서 홍천으로 넘어오는 고갯길로 그 모양이 마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듯 구불구불하다. 오래전에는 한양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사용했던 산길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무렵부터 새로운 도로의 개통으로 방치되다시피 하다가 최근 트래킹 코스로 복원되었다. 미시령보다 부드러운 산세와 울창한 숲으로 산림욕을 즐기기 좋고, 투명하게 흐르는 계곡과 왕복 3~4시간의 적당한 코스로 초보자에게도 추천하는 길이다. 용이 선택한 길 지상에서 긴 시간을 기다리던 요물이 드디어 천운의 날을 맞이했다. 하늘에는 녀석의 몸짓을 가려줄 먹구름이 가득했고, 산에는 오색의 단풍으로 화려한 장막이 씌워졌다.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없을 기회. 천년을 숨죽이고 있던 커다란 용은 온 힘을 다해 지상에서의 마지막 몸부림을 쳤다. 그리고 잠시 뒤, 감쪽같이 사라졌다. 녀석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듯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산을 넘는다. 승천을 가려줬던 찬란한 단풍은 올가을에도 여지없이 화려하게 피어났다. 용이 선택했던 마지막 길. 깊은 숲에 남아있는 그 길을 걸으며 신비한 정취에 빠져본다.
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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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왜가리 번식지
새들이 고른 명당
1970년 천연기념물 제229호로 지정된 현남면 포매리 백로, 왜가리 번식지는 동해안 최대 번식지로 그 면적이 약 26만 7,892㎡이다. 이곳에는 수령이 100년 이상인 소나무들을 비롯하여 잣나무, 밤나무, 참나무 등이 멋스럽게 자라고 있으며, 한 나무에 4~5쌍의 왜가리, 백로가 둥지를 틀고 있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도래 시기는 2월 말에서 3월 초순경이며 4월 중순에 산란, 5월 부화, 10월~11월까지 이곳에서 살다가 필리핀 쪽으로 이동한다. 생태계 보호를 위해 사진촬영 시에는 둥지에 가까이 접근하지 않아야하며, 큰 소음을 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새들이 고른 명당
사람은 집을 고를 때 햇볕이 잘 들고, 물이 콸콸 나오고, 튼튼한 벽체로 지어진 집을 선택한다. 그렇다면 백로와 왜가리는 어떤 기준으로 집을 골랐을까? 우리나라 전 지역에 걸쳐 서식하는 백로와 왜가리가 가장 큰 규모를 만들어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양양의 포매리이다. 이곳은 오래된 노송들이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바다로 향하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곳으로 먹이가 풍부해 새들에게는 낙원과 같은 곳이다. 새들이 집을 고르는 기준도 사람의 안목과 다르지 않다.안전하고, 풍요롭고, 청정한 공간.그러니 백로와 왜가리들이 고른 양양의 명당은 두말할 것 없이 아름다운 풍경이 살아있는 곳이다.
현남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