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예향의 맥을 이어가는 화합의 축제!
양양문화제고려목종 10년(서기1007년). 현재의 양양읍 성내리를 중심으로 양주성을 세우고, 외적의 침입을 수호하는 기지로 삼았다.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해마다 순국영령 위로와 국태민안, 풍년을 기원하는 장군성황제를 지냈다. 양양군에서는 매년 단오때 양양문화제를 개최함으로써 그 제례의식을 계승하고 있다.
양양군에는 선사문화의 시대별 유적이 넓게 분포되어 하나의 큰 선사문화권을 이루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신석기인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먼저 취락을 이루고 살았던 오산리 신석기유적지의 주거지 그리고 청동기,철기 시대의 집자리와 무덤이 많이 산재해 있고 철기시대 무덤 주위에 신라시대 무덤도 있었다. 이는 선사인들의 삶과 죽음의 증거로서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으며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사람이 살았다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신라통일 직후부터 북상하기 시작한 불교문화가 당시 한 고을로서는 가장 크게 번창하였고, 그 사찰(낙산사, 영혈사, 오색선사, 선림원, 진전사 등)의 창건이 거의 우리나라의
고승대덕을 지칭하는 큰 스님들에 의해 창건되었다. 특히 낙산사는 세계 8대 관음성지의 한 곳으로 고려를 거쳐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궁중불교의 도량으로 각광을 받았으며,
한국불교의 주체인 오늘의 조계종을 신라로 연결시켰을 때 그것은 바로 진전사로 직결되는 것이다.
이곳의 불교문화야말로 오늘의 정통을 찾을 수 있는 원류가 되는 것이다.
구한말에는 의병항쟁을 비롯하여 특히 기미독립만세 운동은 지방으로서는 가장 맹력한 구국항쟁이었으며, 신간회조직, 농민조합운동 등이 계속되었고,
8.15해방 이후에는 반공운동의 진원지가 되었다. 6.25동란 때에는 국군 6개 사단이 창설되었고, 근년에는 사단, 군단이 창설되어 명실공이 국군의 제2요람이 되었다. 양양문화제 요체 향토축제는 역사성과 전통성을 계승하고 위와 같은 향토문화의 특성을 살린 고유한 독창성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장군성황제를 비롯하여 신석기인 가장행렬, 불교제등행렬, 양주방어사 행차, 대포수군만호행차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전 및 영신행렬을 구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