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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담장
마음을 달리하면 느껴지는 것
조선 전기 세조(1455~1468) 시절 낙산사를 고쳐 지으며 원통보전(법당) 둘레에 사각으로 쌓은 담장이다. 이후 원래의 담장은 거의 사라지고 일부분만 원형으로 남아 있어 최근 보수를 통해 전체를 연결하여 다시 쌓았다. 담장의 형태는 기와와 흙을 차례대로 쌓은 형식으로, 중간에 규칙적으로 화강암을 넣어 고유의 무늬를 만들어 냈다. 1971년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었으며 높이 3.7m 길이 220m이다.
마음을 달리하면 느껴지는 것
세속의 번뇌를 씻기 위해 들어가는 절. 신성한 법당으로 들어서면 그곳이 풍기는 위엄에 어쩐지 고개를 숙이게 된다. 천년의 역사를 품은 낙산사도 마찬가지. 원통보전에 들어서기 전 독특한 무늬의 담벼락이 벌써 마음가짐을 바로잡게 만든다. 마치 신성한 구역과 속세의 경계를 알려주는 듯 법당을 단호하게 감싸고 있는 황토색 담장. 그 위로 보이는 원통보전의 거대한 지붕이 담장 안쪽을 더욱 엄하게 만든다. 마음을 가다듬고, 큰 용기를 내듯 담장 사이 작은 문을 지나 법당 앞으로 들어간다. 순간 달라지는 담장의 존재. 모든 걸 포근하게 감싸주고 보호하는 것처럼 법당과 나를 하나로 묶으며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겉과 속이 똑같은 낙산사의 담장.안과 밖에서 달라진 건 내 마음가짐뿐이다.
강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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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홍예문
지금도 역사는 쓰인다.
1467년(세조 13) 왕이 낙산사에 행차한다는 얘기를 듣고 양양 강현면 정암리 길가의 돌을 가져와 무지개 모양으로 쌓았다고 전해진다.문을 이루고 있는 총 26개의 화강석은 당시 강원특별자치도 내 고을 수 26개를 표현했다고 한다. 문의 기단부에는 2단의 큼직한 자연석을 쌓았고, 그 위에 화강석을 앞뒤 두 줄로 쌓아 둥근 문을 만들었다. 현재 홍예문 위에는 2005년 화재로 다시 건립된 문루(文樓)가 세워져 있다.
지금도 역사는 쓰인다.
낙산사 원통보전을 둘러보고 사천왕문을 지나 걸어가면 누각 아래 무지개 모양의 석문이 기다리고 있다.거칠게 다듬어진 제각각의 바위들과 정교하게 성형된 화강석이 이룬 조화. 성벽처럼 세워진 돌담 중간에는 꽤 넓은 통로가 동그랗게 열려있다. 창건 이후 커다란 화재들로 소실과 재건을 여러 번 겪은 천년고찰 낙산사.그 안타까운 아픔의 기록에는 이 홍예문도 포함되어 있다. 1963년 세워진 홍예문 위의 누각은 2005년 화재로 전체 소실.하단의 석문도 불길이 남긴 까만 흔적으로 손쓸 틈 없이 훼손되었다. 하지만 역사는 과거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기에.낙산사는 열심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 더욱 단단해진 마음으로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다.
강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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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홍련암
꿈과 소원이 이뤄지는 곳
676년(신라 문무왕 16)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해안 절벽 위 작은 법당으로 ‘한국 3대 관음성지’라 불린다. 오래전 의상이 바닷속에서 나타난 연꽃에 소원을 빌었는데 뜻대로 성취되자 이곳에 ‘붉은 연꽃이 바다에서 나타났다’라는 이름을 담아 홍련암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법당은 1869년(고중 6)에 중건된 것으로 목조 기와 건물로 건립되어 있다. 법당 안에는 50cm가 조금 넘는 작은 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으며 입구 왼쪽에는 소원을 들어주는 삼족섬이 놓여있다.
꿈과 소원이 이뤄지는 곳
홍련암으로 들어가기 전 법당 왼쪽에 다리가 세 개인 두꺼비가 앉아 있다. 삼족섬이라 불리는 이 두꺼비를 만지면 꿈과 소원이 이뤄진다고 전해진다.삼족섬에 조심스럽게 소원을 빌고, 드디어 기대했던 홍련암을 마주해 본다. 해안 절벽 가장 끝. 낭떠러지나 다름없는 이곳을 보금자리로 정한 작은 암자 홍련암. 코앞에서 사납게 철썩이는 파도가 무섭지도 않은지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터전을 지켜왔다. 생각보다 훨씬 소박한 홍련암은 신통하게도 소원이 이뤄지는 명소.이곳을 창건한 의상스님도 여기에 소원을 빌어 성취했다 전해진다. 삼족섬에게 전했던 소원을 다시 한 번 바다를 향해 빌어본다. 그러다 문득 벼랑 끝에 서 있는데 못 할 일이 없겠다는 용기가 생긴다. 홍련암이 주는 깨달음과 용기. 어쩌면 그 힘이 스스로의 꿈과 소원을 이루게 하는 건 아닐까.
강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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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해수관음공중사리탑 및 사리장엄구
낙산사 홍련암 관음상에 다시 금칠을 하는 중 공중에서 사리가 떨어졌다고 한다. 이를 모시기 위해 1692년(숙종 18)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사리탑 1기와 사리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사리 보관용 장치) 37점, 사리탑 조성 기록이 새겨진 사리비 1기를 낙산사에서 볼 수 있다.특히 사리탑, 사리비, 사리장엄구를 모두 갖춘 보기 드문 조선 후기의 유물로 당시의 공예기술과 직물류 제작 수준을 파악할 수 있어 귀한 자료로 여겨진다.
역사가 보관된 석탑
양양의 명소 낙산사는 단순한 종교의 의미를 넘어 우리의 역사를 지켜온 곳이다. 경내 곳곳에 남아 있는 보물과 유물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해수관음공중사리탑과 비, 사리장엄구도 마찬가지. 과거의 문화와 예술, 선조들의 뜻과 정취, 불교의 의미와 사상까지 이 작은 탑 안에 모두 담겨져 있었다. 승려의 흔적을 모셔둔 유물에서 당시의 문화를 발견했고, 그 모든 과정의 상세한 기록으로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었다. 기암절벽 위 바다를 바라보고 선 사리탑 하나에 한 시대가 보관되어 있다. 사리탑을 만들며 이 절경을 바라봤을 선조들의 시간에 지금 나의 시간을 더해본다.
강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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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칠층석탑
낙산사 원통보전 앞뜰에 세워져 있는 칠층석탑은 보물 제499호로 낙산사의 보물인 두 보주(보배로운 구슬)를 간직하고 있는 석탑이다. 1466년(세조12) 3층에서 7층으로 중수되었다고 전해지며, 높이 6.2m, 상륜부 1.4m로 위쪽에 24개의 잎을 가진 겹송이 연꽃이 자리하고 있다. 비교적 간략하고 단순한 모양을 이루고 있지만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석탑으로 평가된다.
강인한 석탑의 임무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절 마당에 기품 있는 그림을 그려준다.간단한 구조로 화려함은 없지만 단정하고 고상한 칠층석탑. 그리 높지도, 그리 낮지도 앉은 석탑의 키가 적당함의 미학을 일깨워 준다. 전쟁과 태풍, 침략과 화재. 거칠고 모진 긴 세월을 꿋꿋하게 견뎌낸 칠층석탑. 이 돌탑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건 낙산사의 두 보물, 보주이다.자신의 일부가 깨지고 부서져도, 끝까지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칠층석탑의 놀라운 견고함에는 자신의 임무를 다하려는 의지도 있었으리라.오늘도 절 마당에 자신의 키보다 더 긴 그림자를 그리며강인한 석탑은 본인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
강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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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의상대
부처를 만나는 정자
의상대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와 낙산사를 지을 때 이곳에 올라 직접 산세를 살폈다고 전해지며, 의상대사의 좌선 수행처라고도 알려져 있다. 1925년 건립 후 폭풍, 붕괴위험 등을 이유로 여러 번의 중건을 거쳤으며 현재의 의상대는 1995년 8월, 육각정으로 복원된 모습이다. 낙산사에서 관음굴로 가는 언덕 위 자리하고 있고, 의상대에서 내려 보는 동해의 풍경과 해안절경이 유독 빼어나 ‘관동팔경’으로 손꼽힌다.
부처를 만나는 정자
신라의 고승은 꿈에 나온 부처의 뜻에 따라 바다 앞 언덕에 절을 세웠다.그리고 해안가 암석 위, 털썩 주저앉아 좌선을 시작했다. 부족한 마음을 꾸짖듯 철썩거리는 소리와온 몸을 휘돌아 나가는 냉정한 바람. 이 모든 것이 부처의 따사로운 자비로 느껴질 때까지고승은 외로이 앉아 하염없이 불경을 되새긴다. 그리고 1925년, 이곳에 고승의 이름을 딴 정자가 만들어졌다.낙산사 의상대.이곳에 바르게 앉아 과거의 고승에게 조용히 묻는다.“여기서 부처를 만나셨는지요.”
강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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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건칠관음보살좌상
자비로운 눈빛
낙산사 원통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크기 112cm의 불상으로 보물 제1362호이다. 건칠이라는 것은 나무, 종이, 천으로 만들어 그 위에 옻칠을 하고 다시 도금한 것을 말한다. 고려 후기의 전통양식을 바탕으로 만든, 조선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6.25전쟁 후 폐허가 된 사찰을 복구할 때쯤 낙산사에서 약 8km 떨어진 설악산 ‘영혈사’에서 모셔왔다고도 전해진다.
자비로운 눈빛
원통보전에 들어서면 고개만 앞으로 약간 숙여 나를 굽어보는 우아한 자태의 불상이 있다. 높고 화려한 보관과 온몸을 두르고 있는 구슬 장식.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자락이 유난히 더 반짝거리며 화려한 품위를 더해준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불상을 바라보니, 둥글고 부드러운 얼굴에 수 십 가지 표정이 담겨 있다. 아래를 지긋이 바라보는 눈과 적당히 오뚝한 코, 슬며시 미소를 지었으나 단호하게 다문 것 같은 붉은 입술. 자비로워 보이기도, 엄해 보이기도 하는 불상의 눈빛에 길게 눈을 맞추지 못하고 시선을 자꾸 돌리게 된다.자정기의(自淨基意).부처는 스스로의 뜻과 마음을 항상 깨끗이 하라고 했다. 다시 이 불상 앞에 설 때에는 괜한 부끄러움도 없이 와야겠다.
강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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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부처가 사랑하는 고찰
671년(신라 문무왕 11년) 관음보살의 진신이 근처 해변의 굴속에 머문다는 말을 듣고 의상대사는 굴에 들어가 예불을 하였다. 그러던 중 관음보살이 나타나 수정으로 만든 염주를 주면서 절을 세울 위치를 알려주어 이곳에 사찰을 창건하고 ‘낙산사’라 칭했다고 한다. 2005년 대규모의 산불 이후 대대적인 중수를 거쳤으며, 일대의 발굴 조사도 진행하였다. 그 결과 통일신라, 고려시대의 기와조각들이 다량 출토되어 낙산사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낙산사 일대 92.637㎡는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경내에는 칠층석탑, 원통보전, 홍예문, 홍련암, 의상대 등 여러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현재 보물 제1723호 공중사리탑과 보물 제1362호 건칠관음보살좌상, 보물 제499호 칠층석탑을 비롯하여 해수관음상, 천수관음상, 의상대사의 유물이 봉안된 의상기념관 등 가치가 뛰어난 성보문화재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신청 시 템플스테이가 가능하다. 더불어 수려한 동해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어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부처가 사랑하는 고찰
푸른 동해와 맞닿은 오봉산 끝자락. 천년의 시간을 지나온 사찰이 있다. 짙은 바다 내음과 파도 소리가 진하게 들려오는 아름다운 언덕. 청명한 풍경 소리까지 더해진 낙산사는 부처의 예지로 1300여 년 전부터 이곳에 자리한 강원특별자치도 대표 사찰이다. 반짝이는 파도와 소나무 향 가득한 경내는 수려한 절경으로 유명하며, 절을 둘러보는 산책로는 경건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해바다의 너그러움을 품고 있는 이곳에 오늘도 수많은 이들이 간절한 마음을 덜어놓고 간다.
강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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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준가옥
변치 않는 품격
조선 후기에 지어진 주택으로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가옥은 ‘ㅓ’형태의 안채와 ‘ㅣ’형태의 사랑채로 이뤄졌으며 안방과 상방 전면에 환기구 시설도 갖추고 있다. 앞면 마당은 두 개의 출입구가 있고, 사랑채 건물은 남자들이, 안채 쪽은 여자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마을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지리적 위치와 뒤편 야산과 어우러진 조화가 돋보이는 가옥으로 현재는 경주 김씨 후손이 거주하고 있다.
변치 않는 품격
야산 바로 밑 마을의 가장 높은 곳. 뒤로는 든든하게 산이 받쳐주고, 앞쪽으로는 소작농의 땅과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은 아무래도 지체 높은 양반이나 마을의 지주가 차지했던 명당으로 보인다. 약 200여 년 전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김택준 가옥에는 아직도 전성기의 자태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부잣집에서나 볼 수 있던 왼쪽 마당의 전용 우물과 별도로 분리되어 있는 사랑채와 안채. 고풍스러운 팔작지붕 아래 마을을 내려 보던 작은 마루까지. 강산이 수십 번 변한 긴 세월에도 끄떡없는 위엄 또한 당시의 전성기를 증명하는 듯하다. 오래된 가옥에서 양반이 된 것처럼 뒷짐을 지고 마당을 걸어본다.시간이 아무리 지난다 한들 이 가옥의 품격이 어디 가겠는가.
현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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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래가옥
고택에 쌓여있는 추억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로 김해김씨의 14대가 조선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세월에 비해 기둥이나 지붕 등이 깨끗해 보이는데, 이는 후손들이 꾸준히 보수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고택에 쌓여있는 추억
10년, 20년이면 허물고 다시 지어지는 도시의 집들. 안타깝게도 현대인들은 잦은 이사로 터전에서의 추억을 소모해버린다. 하지만 나의 선조가 살아왔고, 내 일생이 모두 쌓여 있는 고택이라면 어떨까? 150년을 하나의 가문이 대대로 지켜온 나이든 고택. 아궁이는 가스레인지가 되고 우물대신 수도꼭지가 생겨났지만 이 집에 차곡차곡 쌓여온 가문의 추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증조할아버지가 좋아했던 마루와 할아버지가 직접 손본 기와지붕, 아버지와 함께 뛰놀던 작은 마당까지. 우리 가족의 모든 추억은 이 한 채의 집에 겹겹이 쌓여 있다.
현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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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회첩
젊은이들의 조력자
'기구회첩은 1761년 중국 양양의 기구회를 본떠 창립한 양양군 유지들의 친목모임인 기구회의 회첩으로 동명이지(同名異地)의 문화를 비교해 볼 수 있고, 현재까지도 기구회의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어 지역의 미풍양속 등 향토문화의 계승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젊은이들의 조력자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세상. 과학과 의학, 기술의 진보로 인류의 난제인 수명 연장의 꿈이 실현되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더 긴 인생을 얻었고, 시대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 설사 젊음이 조금 길어졌다 해도 결국 사람은 노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당연한 순리를 알면서도 우리는, 노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250여 년의 전통을 가진 양양의 ‘기구회’.지역의 원로들이 모여 젊은이들이 더 나은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조력하는 일을 이어왔다. 덕분에 지켜져야 할 문화는 바르게 계승되었고, 비록 사라졌어도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가치 있는 것들이 기록되었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고 했다.우리가 가게 될 그 길을 앞서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보는 건 어떨까.
손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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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조대
노송과 바다
해변에 기암적별이 우뚝 솟아 있고 그 꼭대기 노송이 자리하고 있다. 양양 최고의 경승지로 꼽히는 곳으로 1955년 건립된 작은 정자(하조대)에서 바라보는 동해의 풍경이 일품이다. 하조대라는 이름은 이곳에서 휴양한 조선의 개국 공신, 하륜과 조준의 앞 글자를 따서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2009년 명승 제68호로 지정되었으며 이 하조대를 바라볼 수 있는 바닷가에 고운 모래를 자랑하는 하조대 해수욕장이 위치해 있다.
노송과 바다
파도에 깎인 기암괴석 위, 200살을 넘긴 노송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아무리 한결같은 것이 소나무라지만 너무도 긴 세월 그리 편해 보이지 않는 자리를 지키는 노송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예부터 이곳을 한번 거친 이는 딴사람이 된다는 말이 있다.그만큼 산수자연의 위상이 남다른 하조대.암석 위 노송의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이곳을 거친 수많은 이들이 무엇을 얻어 갔는지는 알 수 있다. 큰 바다에 지지 않는 노송의 기상과.긴 세월을 함께하며 서로를 지켜주는 자연의 정도.
현북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