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도정
작은 섬이 보여주는 위대함
양양군 현남면에 위치한 죽도는 완벽하게 독립된 섬이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육지와 접하고 있다. 사계절 송죽이 울창하여 ‘죽도’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이 섬의 장죽은 유독 강인해 조선시대 조정에 진상될 정도였다고 한다. 정상의 죽도정 정자는 1965년 현남면 내 부호들이 행정 지원을 받아 건립한 것으로 팔각집우 전면 3칸, 측면2칸으로 이뤄져있다. 짙은 송죽향을 느낄 수 있는 산책로와 둘레길이 유명하며 죽도정 정상에서 양양의 청정 바다를 전망할 수 있다.
작은 섬이 보여주는 위대함
사시사철 송죽이 울창한 작은 섬. 둘레 1km, 높이 53m의 작은 섬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오직 파도 소리만 들려오는 죽도로 들어가 제법 우아한 정자에 올라본다.탄성과 함께 펼쳐진 푸른 바다와 하늘. 그리고 가만히 서서야 느껴지는 진한 솔향과 죽향.자로 잰 듯 그어진 한 줄의 수평선까지 확인하고 나서야죽도정이 품고 있는 그림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게 된다. 섬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그곳엔 이미 하늘과 바다가 담겨있으니.
현남면
-
-
조규승가옥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80호로 지정된 가옥으로 정확한 건축연도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현 소유자 조규승 氏의 10대조가 300년 전쯤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집은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로 구분되어 있으며 ㅁ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팔작지붕의 안채는 앞면 5칸, 옆면 2칸의 규모이며, 사랑채를 먼저 지은 후 안채를 증축한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는 가운데 방 3칸을 배치하고 앞면에 툇마루가 있는 형태이며, 툇마루 양옆으로는 부엌과 창고가 위치하고 있다. ㅁ자 형태의 가옥이기 때문에 폐쇄된 안마당을 가지고 있고, 곳간채는 60년 전에 보수한 것이다.
시간이 녹아든 고택
나지막한 구릉 위에 오래된 기와집 한 채가 있다.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그 품위가 더욱 돋보이는 집. 수백의 시간을 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고택은 위풍당당한 자태를 마음껏 뽐내고 있다.앞마당에서 가옥 전경을 마음껏 감상하고, 가까이 가보니 제법 낡은 나무 기둥. 그 길었던 시간은 아마도 기둥과 서까래 속에 깊이 녹아들었나 보다. 작은 그늘이 되어 주는 처마 및 툇마루에 앉아 저 먼 풍경을 가만히 바라본다. 집 뒤편 나무들을 흔드는 시원한 바람과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오래전 이곳의 주인도 이토록 아름다운 경치를 보려고 여기에 집을 지었나 보다.
현남면
-
-
일현미술관
2005년 양양군 최초로 개관한 일현미술관은 야외조각 공원과 주전시장을 비롯하여 산책로와 전망대 등을 갖추고 있으며 다양한 프로그램과 이벤트 개최로 지역사회, 대중과 꾸준히 소통을 이어가는 미술관이다. 야외 조각 공원에서는 양양의 풍경에 녹아든 현대미술작품을 관람할 수 있으며, 실내전시장에서는 매번 다른 주제의 기획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인생 명작을 만나다
저 멀리 보이는 설악과 바다는 하나의 배경이 되고,그 앞에 놓여있는 기묘한 미술품은 자연에 그려진 작품이 된다.생전 처음 보는 회색의 조각품도, 볼수록 빠져드는 마성의 그림도 자연 속에 놓여있으니 더 많은 이야기가 상상이 되고, 더 다양한 감정들이 느껴진다.루브르 박물관의 세계적 작품만이 명작이 아니다. 푸른 산을 배경으로 한 조각도, 해풍이 화가인 듯 부드러운 그림도 이곳에서 만났기에 내 인생의 가장 멋진 명작이 된다.양양의 눈부신 자연이 초대하는 미술관. 인생의 명작을 만나러 일현미술관으로 떠나보자.
손양면
-
-
이두형가옥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된 이두형가옥은 지어진지 약2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는 강원특별자치도의 전형적인 민가, 온돌 중심의 겹집이며 여기에 마루를 더했다. 자연석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웠으며 서까래는 홑처마 위 3량 구조로 지어졌다. 본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겹도리 팔작지붕이다. 남쪽 앞마당에 길하다는 대추나무가 있는 것으로 보아 풍수지리설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경주이씨 종가의 후손이 거주하며 관리하고 있다.
시골의 정취가 그립다면
수백의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낡은 가옥. 이곳 저것 성한 곳이 없어 보이지만 마루에 앉아 햇볕을 쬐는 노인을 보니 편안함과 아늑함이 느껴진다. 성인 셋이 누우면 꽉 찰 것 같은 작은방들과 옛 걸음쇠를 그대로 쓰고 있는 외양간, 아담한 부엌으로 이루어진 오래된 가옥에서 진짜 시골의 정취를 감상해 본다. 앞마당에서 따온 대추들은 붉은 마루에 펼쳐져 있고, 낡은 대문 옆에는 한 해치 땔감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기와 끝에는 예쁘게 깎인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뒷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다. 뒤뜰의 장독대에서는 구수한 장들이 익어가고 늦은 오후 마루에 나와 앉은 노인은 저 먼 산에 눈을 맞춘다. 소박하고 따뜻한 할머니네 집. 언젠가 느껴본 정겨움이 그립다면 이두형가옥으로 마실 가보자.
서면
-
-
오색리삼층석탑
홀로 살고 있는 석탑
오색리 약수터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면 1km쯤 거리에 있는 절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곳은 옛 성국사지로 추정되는데 명확하지 않다.대지에서는 법당 자리를 추측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증거와 석탑의 잔재들이 발견 되었고, 그중 완전히 무너져 있는 것을 1971년 복원해 다시 세운 것이 오색리 삼층석탑이다. 석탑의 각 전각에는 풍경을 달았던 작은 구멍이 남아 있으며, 탑의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불탑으로 보인다.
홀로 살고 있는 석탑
완전히 사라진 절터에 드문드문 남아 있는 돌덩이들. 무참하게 흩어진 조각들을 소중히 모아 과거의 시간을 재현했다.완성하고 보니 제법 기품 있는 석탑. 하지만 그렇게 세워진 석탑은 더 비참해 보이기도 한다. 수려한 산세와 화려한 단풍으로 언제인지 알 수 없을 때부터 명성을 떨쳐온 오색. 이곳에 있던 절이라면 분명 천하를 호령할 만큼 눈부셨을 것이다.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빛났을 석탑. 전각마다 달려 있는 풍경이 바람에 찰랑이며 잔잔한 감동을 선물하고, 우아하게 하늘을 향한 석탑의 자태는 찾아온 이들의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제는 텅 빈 경내에서 홀로 과거의 시간을 살고 있는 석탑. 조금 더 긴 시간을 견뎌 오색의 절을 다시 만나고 그때의 소리를 다시 들려주길 기대해본다.
서면
-
-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8천 년 전으로 떠나는 여행
지하1층, 지상1층 규모의 박물관으로 3개의 전시실과 세미나실, 학예실, 수장고 등을 갖추고 있다. 현재 1,645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제1전시실에는 움집과 토기제작, 사냥, 어로 등 오산리 신석기인들의 생활모습이 디오라마 형태로 전시되어 있다. 제2전시실에는 오산리유적을 포함하여 강릉 초당동유적과 고성 문암리유적 등 영동지역의 대표적인 선사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옆에 자리한 쌍호의 갈대 군락지에는 470m의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으며 향토유적 답사와 신석기인 생활체험, 박물관 문화학교 운영 등 다양한 형태의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
8천 년 전으로 떠나는 여행
늠름한 산맥과 청정한 바다가 조화로운 도시 양양. 이곳에 터를 잡은 최초의 사람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흔적이 궁금하다면 8천 년 전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1977년 농지전용 작업 중 석기시대,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다량 출토된 오산리 선사유적지. 이곳에서 발굴된 가치 있는 유물들을 전시, 연구하는 박물관으로 다양하고 유익한 교육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하고 있다. 어른들에게는 과거의 신비로움을 아이들에게는 가치 있는 역사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주는 곳. 타임머신을 타고 싶다면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으로 들어가 보자.
손양면
-
-
오산리선사유적
시간을 건너 通하는 정서
1977년 쌍호를 매몰하고 농지로 전용하기 위한 작업 중 석기, 토기가 발견되어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다. 1980년부터 1985년까지 여러 차례 조사 결과 총 6개의 자연층위가 나타났으며, 이 중 하나의 층에서만 청동기시대 유물이 발견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신석기시대에 해당한다. 민무늬토기, 덧띠토기, 뾰족바닥형 토기 등 다양한 토기들이 주로 발견되었으며, 한국 최초 강자갈을 타원형으로 쌓아 만든 야외 돌구이 돌무지 시설도 발견되었다.유적지 바로 옆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관람하며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다.
시간을 건너 通하는 정서
오산리선사유적지에서 발견된 집터는 총 14곳.짚으로 만들어진 삼각형의 움집들이 신석기 시대의 마을을 잘 보여준다. 주민들이 사용했을 각종 토기들과 집 중앙에서 불을 피웠던 화덕의 흔적도 이곳에서 함께 발견되었다. 그중 특별하게 다가온 건 야외에서 확인된 5기의 화덕. 일종의 공동취사장으로 사용됐을 거라 추측하고 있다. 이해하기 쉽게 재현된 유적지를 돌아보니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경치 좋은 자연으로 찾아가 삼각형의 텐트를 치고, 야외에서 불을 피워 요리를 해먹는 모습. 주민들이 모여 마을 잔치를 열고,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일상의 풍경. 8천 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멀게 느껴지지만, 그 시간을 건너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괜히 반갑게 느껴진다.
손양면
-
-
영혈사
약수에 남겨둔 마음
신흥사의 말사인 영혈사는 신라시대 689년(신문왕 9)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원효가 입적한 곳이라 하여 영혈사란 이름으로 불렸지만 1688년 숙종이 불에 탄 절을 새로 지으며 그 이름을 영천사로 바꾸었었다. 그러나 고종 때(1887년) 다시 영혈사란 이름을 되찾았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다. 현재의 건물은 1950년에 지어진 것이 남아있는 것이다. 경내에는 극락보전, 산신각, 지장전, 요사 등이 있으며 원효대사 지팡이 전설로 유명한 약수가 샘솟고 있다.
약수에 남겨둔 마음
고즈넉한 사찰 주변을 걷다 보면 어디선가 샘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이끌려 도착한 곳엔 설악산의 맑은 구슬이 솟아나고 있다.일찍이 원효대사는 지팡이 하나로 영혈사의 샘물을 물이 귀한 낙산사 홍련암에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홍련암에 나누어 주고도 여전히 넘치게 솟아나는 샘물을 보니, 마치 부처에게 닿기 위한 중생들의 끝없는 기도를 보는 듯하다. 구슬같이 투명한 샘물로 마른 입술을 적셔본다. 어느 날 이곳에 들린 부처가 목을 축이다 내 마음을 들어주길 바라며, 맑은 샘물에 나의 기도를 빌어놓고 발걸음을 뗀다.
양양읍
-
-
성국사지
화려했던 과거를 숨겨버린 절터
오색약수터에서 주전골 계곡을 따라 1km 가량 오르면 옛 성국사지 절터에 도착한다. 성국사지는 통일신라시대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법당자리를 알아볼 수 있는 흔적들과 층계에 쓰였을 난간석이 남아 있다. 서쪽에는 1971년 복원된 삼층석탑이 있고 동쪽에는 또 다른 석탑의 기단석만 남아 있다.절터는 약 700평 정도이다. 성국사지 터 바로 앞에는 근래에 지어진 성국사 절이 있으니 함께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화려했던 과거를 숨겨버린 절터
불교의 꽃을 피운 통일신라시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경주의 불국사와 석굴암, 석가탑과 다보탑도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이다. 그리고 여기, 같은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또 하나의 절이 있다.태백산맥의 정기와 동해의 기상이 만나는 곳. 양양 오색리에 위치한 성국사지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성국사지 터에는 일부 복원된 석탑 1기와, 무너져있는 석탑 1기, 법당의 자리를 보여주는 돌덩이 몇 개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범상치 않은 위치 선정과 설립된 시대를 보아 그 어떤 절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수려했을 경내.화려한 과거를 숨겨버린 텅 빈 절터를 걸으며 남아있는 석탑에 말을 걸어 아쉬움을 달래보자.
서면
-
-
성국사
오색의 비밀
오색약수터 위 작은 사찰로 신라시대 말 창건되었다. 이후 다사다난한 역사를 거쳐 꽤 긴 시간 폐사로 방치되고 있다가 근래에 법당을 세우고 성국사란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다. 화려한 본당과 편리한 주차장, 쉼터 등이 잘 조성되어 있으며 설악의 풍경을 감상하러 온 등산객들이 쉬었다가는 명소이기도 하다. 오색약수터에서는 약 700m 거리로 누구라도 편하게 걸을 수 있는 트레킹 길이 조성되어 있다.
오색의 비밀
언제인지 알 수도 없는 오래전. 아담한 절 뒤뜰에 눈에 띄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무어라 단정할 수 없는 오색의 찬란한 꽃이 피는 나무. 그리 크지 않은 나무에서는 희한하게도 그 어디서에도 볼 수 없는 오색의 꽃이 만발했다. 그 신기한 나무의 이름을 따 절의 별명도 오색석사로 불렸으며 인근의 지명도 오색리로 변경되었다.그리고 또 어느 날. 오색석사의 스님이 설악의 자연을 감상하며 계곡을 따라 걷고 있었다. 매번 오가는 산길이지만 유독 울창한 숲이 신비스럽게 아름답던 그날. 천천히 산길을 오르던 스님은 계곡 암반에서 남다른 물줄기 하나를 발견했다. 두 손을 공손히 모아 한 모금 맛보니 천하에 없는 신성한 맛. 스님이 발견한 이 약수의 이름도 이곳 지명을 붙여 오색약수로 명명되었다. 신비한 나무가 있던 자리에 다시 세워진 것이 성국사. 오색의 비밀을 품고 있는 절에는 지금도 많은 나그네들이 오가고 있다.
서면
-
-
선림원지홍각선사탑비
존경받은 승려의 이름
양양군 서면 선림원터에 서 있는 승려 홍각선사의 탑비이다. 비석의 형태나글씨를 보아 통일신라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비의 주인공인 홍각선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남아 있는 기록이 없다. 다만 비의 내용과 [대동금석서]에 의하면 홍각선사는 경전을 잘 외웠으며, 역사에 해박하고, 명산을 두루 찾아다니며 참선에 열중했다고 한다. 또한 수양이 깊어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존경받은 승려의 이름
‘스스로를 존경하면 다른 사람도 당신을 존경할 것이다.’중국의 공자는 스스로가 정도를 걸어 바르게 살면, 다른 사람들은 자연히 따르게 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어떤 인물이었는지 남아있는 기록은 극히 드물지만, 섬세한 조각이 받들고 있는 탑비를 보아 홍각선사는 꽤 존경받는 스승이자 승려였던 것이 분명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홍각선사란 이름만큼은 선명하게 남겨두고 떠났다. 따르는 제자들이 운집을 이룰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스승. 그럼에도 본인의 학문에 열중하고 참선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참된 승려. 수많은 존경이 따랐던 사람이라면 그 성품과 올곧음이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해 볼 수 있다. 선림원지 커다란 나무 아래, 자비로운 미소로 푸른 산을 바라보는 승려가 보인다. 그리고 저 멀리 젊은 스님 하나가 그를 부르며 빠르게 다가온다. “홍각선사님!”
서면
-
-
선림원지 승탑
과거의 예술
선림원지 가장 북쪽 끝에 자리하고 있는 승탑은 원래 뒤쪽 50m 위 산기슭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승탑의 용도는 승려(스님)의 유골이나 뼈를 모셨던 것인데, 선림원지 승탑은 일제강점기에 파괴된 부재를 수습하여 현재 위치에 1965년 복원한 것이다. 원래는 아래, 가운데, 위로 나눠진 3단 받침돌과 몸돌, 지붕돌, 상륜부로 완벽히 만들어진 것이나 현재는 바닥돌과 받침돌만 남아 있다. 특히 바닥돌은 자연석 중 땅 위에 드러난 부분만 평평하게 다듬어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기단부 바닥돌 4면에는 사자, 아래받침돌에는 연꽃, 가운데 받침돌에는 구름과 용이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과거의 예술
다정한 사자 한 쌍이 다양한 모습으로 맨 밑을 지키고 있다.그 위를 포근히 덥고 있는 여러 겹의 연꽃잎들. 그 한 단계 위에는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 속 승천하는 용이 보인다. 그리고 또 한 칸 위, 아래보다 조금 작지만 더 수려하게 핀 연꽃이 무언가를 공손히 받치고 있다. 현재 선림원지 승탑이 보여주는 미술은 안타깝게도 여기까지.그 위 어떤 조각들이 한 단계씩 올라가 있었는지는 아무도 확인할 수 없다. 하단의 생생한 조각들이 상단의 모습을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마지막 연꽃 위에는 부처님이 앉아 있었을까.맨 위에는 팔각형의 지붕이 비를 가려주진 않았을까.작은 승탑 하나가 지니고 있는 통일신라의 화려한 예술. 한가로운 선림원지 터에서 과거의 예술을 상상해 본다.
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