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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혈사
약수에 남겨둔 마음
신흥사의 말사인 영혈사는 신라시대 689년(신문왕 9)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원효가 입적한 곳이라 하여 영혈사란 이름으로 불렸지만 1688년 숙종이 불에 탄 절을 새로 지으며 그 이름을 영천사로 바꾸었었다. 그러나 고종 때(1887년) 다시 영혈사란 이름을 되찾았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다. 현재의 건물은 1950년에 지어진 것이 남아있는 것이다. 경내에는 극락보전, 산신각, 지장전, 요사 등이 있으며 원효대사 지팡이 전설로 유명한 약수가 샘솟고 있다.
약수에 남겨둔 마음
고즈넉한 사찰 주변을 걷다 보면 어디선가 샘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이끌려 도착한 곳엔 설악산의 맑은 구슬이 솟아나고 있다.일찍이 원효대사는 지팡이 하나로 영혈사의 샘물을 물이 귀한 낙산사 홍련암에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홍련암에 나누어 주고도 여전히 넘치게 솟아나는 샘물을 보니, 마치 부처에게 닿기 위한 중생들의 끝없는 기도를 보는 듯하다. 구슬같이 투명한 샘물로 마른 입술을 적셔본다. 어느 날 이곳에 들린 부처가 목을 축이다 내 마음을 들어주길 바라며, 맑은 샘물에 나의 기도를 빌어놓고 발걸음을 뗀다.
양양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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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사
학승들의 독서실
양양군 현북면 만월산에 있는 천년이 훌쩍 넘은 고찰이다. 창건자는 혜명, 대주 두 승려로 알려져 있으며 두 사람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명주사’가 되었다고 한다. 1861년, 1880년, 1897년, 1950년 등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되어 중건을 반복하였다. 예부터 월정사 주지를 지낸 종욱스님 등 이름난 학승을 많이 배출했으며,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명주사 동종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학승들의 독서실
법수치계곡을 따라 오르면 작지만 천년의 시간을 품고 있는 사찰 명주사를 만날 수 있다. 과거에는 강원특별자치도에서 건봉사 다음으로 꼽히는 대사찰이었으나 지금은 그저 계곡과 어우러진 단아한 곳이다.전나무가 안내하는 작은 오솔길을 걸어 법당의 중심으로 들어가 본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상쾌함이 정신을 맑게 만들어 준다.그리고 들려오는 청아한 종소리. 몸과 마음이 깨끗이 정돈되었다면 작은 상 앞에 바르게 앉아 사르륵 사르륵 책장을 넘겨본다. 예부터 뛰어난 학승들을 대거 배출한 명주사.아마도 그 비결은 명월산의 정기와 마음을 정리해주는 아름다운 종소리가 아니었을까.
현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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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전사지 도의선사탑
선불교의 종조
진전사지에 남아 있는 보물 제439호의 승탑으로 2층 기단 위에 1석을 놓고 8각 탑신석과 옥개석을 쌓은 형태이다. 높이는 약 3m이며 현재의 모습은 무너져 있던 것을 1968년 다시 세운 것이다. 이 승탑은 진전사지를 창건하고 당나라에서 선종을 공부하고 돌아와 이곳에서 입적한 도의선사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형태와 여러 가지 면에서 건립된 연대를 9세기 중반으로 추측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석조부도탑의 시원이 되는 가장 오래된 부도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
선불교의 종조
신라시대 한 승려가 큰마음을 먹고 당나라로 떠났다. 어떤 답을 찾아 그 먼 길에 나섰는지는 모르겠으나 30년 뒤쯤 다시 나타난 승려는 겉모습도 마음가짐도 달라져있었다. 양양의 진전사로 돌아온 승려는 참선으로 부처님의 뜻을 헤아리는 새로운 수행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경전과 불경으로만 부처를 모시던 승려들에게 참선을 통한 깨달음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파격적인 행태였다. 하지만 지금, 그 승려의 가르침은 조계종이란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고, 선불교를 최초로 도입했다 하여 도의선사는 종조로까지 모셔지고 있다. 용기와 노력으로 새 길을 찾고 그 뜻을 전파하는데 힘썼던 도의선사.그의 마지막 모습을 진전사지 도의선사탑에서 만날 수 있다.
강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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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사동종
산사를 울리는 깊은 소리
고려시대인 1009년 창건된 양양 명주사에 소장되어 있는 동종으로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64호이다. 1704년(숙종 30)에 제작된 조선 후기의 범종으로 그 시대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평가된다. 높이 약 83cm의 종에는 합장천부보살상과 쌍룡, 범자문, 보살, 기하학적인 무늬 등이 조각되어 있다.
산사를 울리는 깊은 소리
종의 꼭지 부분에 앉아 있는 두 마리의 용뉴. 휘어진 혀와 이빨이 유독 강조되어 있어 사나운 괴수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와 대조를 이루는 종의 무늬. 특히 연꽃 가지를 들고 구름 위에 서 있는 보살은 차분하고도 평화롭다. 기대보다 크지 않은 명주사 동종은 태백산 대흥사에서 온 것이라고도 전해지는데, 그 고향이 어디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산사를 울리는 깊은 종소리. 천혜의 자연도, 천 살이 넘은 고찰도 한순간에 침묵시키는 하나의 소리가 종의 가치를 증명할 뿐이다. 부처님의 말씀은 책에서도 자연에서도 만날 수 있다.하지만 오늘은 명주사의 동종이 들려주는 부처님의 말씀을 헤아려 보고 싶다.
현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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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령 옛길
용이 선택한 길
양양에서 홍천으로 넘어오는 고갯길로 그 모양이 마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듯 구불구불하다. 오래전에는 한양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사용했던 산길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무렵부터 새로운 도로의 개통으로 방치되다시피 하다가 최근 트래킹 코스로 복원되었다. 미시령보다 부드러운 산세와 울창한 숲으로 산림욕을 즐기기 좋고, 투명하게 흐르는 계곡과 왕복 3~4시간의 적당한 코스로 초보자에게도 추천하는 길이다. 용이 선택한 길 지상에서 긴 시간을 기다리던 요물이 드디어 천운의 날을 맞이했다. 하늘에는 녀석의 몸짓을 가려줄 먹구름이 가득했고, 산에는 오색의 단풍으로 화려한 장막이 씌워졌다.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없을 기회. 천년을 숨죽이고 있던 커다란 용은 온 힘을 다해 지상에서의 마지막 몸부림을 쳤다. 그리고 잠시 뒤, 감쪽같이 사라졌다. 녀석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듯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산을 넘는다. 승천을 가려줬던 찬란한 단풍은 올가을에도 여지없이 화려하게 피어났다. 용이 선택했던 마지막 길. 깊은 숲에 남아있는 그 길을 걸으며 신비한 정취에 빠져본다.
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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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사부도군
승려의 마지막 모습
명주사에서 소유하고 있는 총12기의 부도로, 승려들의 유골이나 사리 등이 보관되어 있는 무덤을 뜻한다. 12기의 부도군은 원래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는데 1994년 지금의 자리로 모아 보존하고 있다. 12기의 부도는 조금씩 다른 모양을 갖추고 있으며 7기는 원당형, 5기는 석종형에 속한다. 현재 4기의 비석과 함께 명주사 부도군 밭에 남아있다.
승려의 마지막 모습
죽음은 결국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막연하고 무서운 존재이지만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결국 꼭 한번 겪어야 하는 당연한 것이다. 여기, 자연의 순리대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간 승려들의 마지막 모습이 남아있다. 12명의 승려는 각자 다른 삶을 살았겠지만 자연으로 돌아감에 있어 마지막 모습은 모두 같아 보인다.먼저 생을 다한 승려들을 바라보며 감히 부처의 뜻을 헤아려본다. 허무한 삶이 되지 않으려면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그러나 결국, 모두에게는 끝이 있으니 그리 욕심낼 필요는 없다는 것. 승려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교훈에 잠시 고개를 숙이고 명주사의 품으로 들어가 본다.
현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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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전사지
상상으로 만나는 절
설악 끝자락에 있는 진전사는 창건 및 폐사에 대한 기록이 없어 내력 추측이 불가한 절이다. 다만 821년(헌덕왕 13) 도의선사가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경전보다 참선을 위주로 수행하는 선불교를 신라 최초로 전래한 곳이며,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선사가 출가하여 구족계(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 할 계율)를 받은 곳이라 한다. 1960년대 이전까지는 ‘둔전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왔으나 1975년 조사 당시 ‘진전’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진전사라는 이름을 찾게 되었다. 현재 진전사지에는 삼층석탑과 도의선사묘탑, 진전사지 부도가 남아 있다.
상상으로 만나는 절
설악에 스며있는 고대의 사찰.빼어난 자연과 어우러져 기품이 넘치던 사찰은 이제 그 흔적만이 아련하게 남아있다. 한국 종교사에 큰 획을 그으며 지금까지도 놀라움을 선물하는 신라시대의 불교. 그 화려했던 기상은 진전사지에 남은 몇 개의 탑에 서려있고, 찬란했던 전성기는 고승들의 이야기로만 짐작할 수 있다. 설악의 끝자락.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는 공허한 빈터. 새들의 낚시터인 둔전저수지 옆을 걷다 보면 상상으로만 만날 수 있는 진전사지가 기다리고 있다.
강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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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전사지 삼층석탑
화려한 석탑의 속내
양양군 진전사지에 남아있는 불탑으로 통일신라시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1966년 국보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정확한 연도는 기록된 것이 없으나 진전사는 우리나라에 선불교를 전한 도의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탑의 높이는 약 5m이며 탑의 각 층에는 우주, 탱주, 천인좌상 등이 조각되어 있다. 석탑은 뛰어난 균형미를 갖추고 있고 하층기단에서부터 차례로 새겨진 비천상, 팔부신중, 사방불 조각이 눈에 띄는데 이는 화려했던 진전사의 모습을 반영한 것으로 추측된다.
화려한 석탑의 속내
섬세하고 화려한 석탑의 조각들이 저마다 할 얘기가 많은 듯 생생히 살아 있다. 양쪽 팔과 무릎에 걸쳐 법의를 덮고, 가슴 앞에 있는 왼손으로 약합을 들고 있는 약사여래상은 금방이라도 극락세계가 어디인지 알려줄 것 같다. 문헌의 기록이 극히 적어 그 정체가 더 궁금한 둔전리의 진전사.도의선사의 가르침이 시작된 곳이라는 것 외에는 알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 그나마 절터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삼층석탑. 이곳을 오간 승려들의 얼굴과, 이곳에서 쓰인 불교의 역사를 삼층석탑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도도하게 서 있다.
강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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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의상대
부처를 만나는 정자
의상대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와 낙산사를 지을 때 이곳에 올라 직접 산세를 살폈다고 전해지며, 의상대사의 좌선 수행처라고도 알려져 있다. 1925년 건립 후 폭풍, 붕괴위험 등을 이유로 여러 번의 중건을 거쳤으며 현재의 의상대는 1995년 8월, 육각정으로 복원된 모습이다. 낙산사에서 관음굴로 가는 언덕 위 자리하고 있고, 의상대에서 내려 보는 동해의 풍경과 해안절경이 유독 빼어나 ‘관동팔경’으로 손꼽힌다.
부처를 만나는 정자
신라의 고승은 꿈에 나온 부처의 뜻에 따라 바다 앞 언덕에 절을 세웠다.그리고 해안가 암석 위, 털썩 주저앉아 좌선을 시작했다. 부족한 마음을 꾸짖듯 철썩거리는 소리와온 몸을 휘돌아 나가는 냉정한 바람. 이 모든 것이 부처의 따사로운 자비로 느껴질 때까지고승은 외로이 앉아 하염없이 불경을 되새긴다. 그리고 1925년, 이곳에 고승의 이름을 딴 정자가 만들어졌다.낙산사 의상대.이곳에 바르게 앉아 과거의 고승에게 조용히 묻는다.“여기서 부처를 만나셨는지요.”
강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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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8천 년 전으로 떠나는 여행
지하1층, 지상1층 규모의 박물관으로 3개의 전시실과 세미나실, 학예실, 수장고 등을 갖추고 있다. 현재 1,645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제1전시실에는 움집과 토기제작, 사냥, 어로 등 오산리 신석기인들의 생활모습이 디오라마 형태로 전시되어 있다. 제2전시실에는 오산리유적을 포함하여 강릉 초당동유적과 고성 문암리유적 등 영동지역의 대표적인 선사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옆에 자리한 쌍호의 갈대 군락지에는 470m의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으며 향토유적 답사와 신석기인 생활체험, 박물관 문화학교 운영 등 다양한 형태의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
8천 년 전으로 떠나는 여행
늠름한 산맥과 청정한 바다가 조화로운 도시 양양. 이곳에 터를 잡은 최초의 사람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흔적이 궁금하다면 8천 년 전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1977년 농지전용 작업 중 석기시대,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다량 출토된 오산리 선사유적지. 이곳에서 발굴된 가치 있는 유물들을 전시, 연구하는 박물관으로 다양하고 유익한 교육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하고 있다. 어른들에게는 과거의 신비로움을 아이들에게는 가치 있는 역사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주는 곳. 타임머신을 타고 싶다면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으로 들어가 보자.
손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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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부처가 사랑하는 고찰
671년(신라 문무왕 11년) 관음보살의 진신이 근처 해변의 굴속에 머문다는 말을 듣고 의상대사는 굴에 들어가 예불을 하였다. 그러던 중 관음보살이 나타나 수정으로 만든 염주를 주면서 절을 세울 위치를 알려주어 이곳에 사찰을 창건하고 ‘낙산사’라 칭했다고 한다. 2005년 대규모의 산불 이후 대대적인 중수를 거쳤으며, 일대의 발굴 조사도 진행하였다. 그 결과 통일신라, 고려시대의 기와조각들이 다량 출토되어 낙산사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낙산사 일대 92.637㎡는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경내에는 칠층석탑, 원통보전, 홍예문, 홍련암, 의상대 등 여러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현재 보물 제1723호 공중사리탑과 보물 제1362호 건칠관음보살좌상, 보물 제499호 칠층석탑을 비롯하여 해수관음상, 천수관음상, 의상대사의 유물이 봉안된 의상기념관 등 가치가 뛰어난 성보문화재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신청 시 템플스테이가 가능하다. 더불어 수려한 동해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어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부처가 사랑하는 고찰
푸른 동해와 맞닿은 오봉산 끝자락. 천년의 시간을 지나온 사찰이 있다. 짙은 바다 내음과 파도 소리가 진하게 들려오는 아름다운 언덕. 청명한 풍경 소리까지 더해진 낙산사는 부처의 예지로 1300여 년 전부터 이곳에 자리한 강원특별자치도 대표 사찰이다. 반짝이는 파도와 소나무 향 가득한 경내는 수려한 절경으로 유명하며, 절을 둘러보는 산책로는 경건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해바다의 너그러움을 품고 있는 이곳에 오늘도 수많은 이들이 간절한 마음을 덜어놓고 간다.
강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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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홍련암
꿈과 소원이 이뤄지는 곳
676년(신라 문무왕 16)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해안 절벽 위 작은 법당으로 ‘한국 3대 관음성지’라 불린다. 오래전 의상이 바닷속에서 나타난 연꽃에 소원을 빌었는데 뜻대로 성취되자 이곳에 ‘붉은 연꽃이 바다에서 나타났다’라는 이름을 담아 홍련암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법당은 1869년(고중 6)에 중건된 것으로 목조 기와 건물로 건립되어 있다. 법당 안에는 50cm가 조금 넘는 작은 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으며 입구 왼쪽에는 소원을 들어주는 삼족섬이 놓여있다.
꿈과 소원이 이뤄지는 곳
홍련암으로 들어가기 전 법당 왼쪽에 다리가 세 개인 두꺼비가 앉아 있다. 삼족섬이라 불리는 이 두꺼비를 만지면 꿈과 소원이 이뤄진다고 전해진다.삼족섬에 조심스럽게 소원을 빌고, 드디어 기대했던 홍련암을 마주해 본다. 해안 절벽 가장 끝. 낭떠러지나 다름없는 이곳을 보금자리로 정한 작은 암자 홍련암. 코앞에서 사납게 철썩이는 파도가 무섭지도 않은지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터전을 지켜왔다. 생각보다 훨씬 소박한 홍련암은 신통하게도 소원이 이뤄지는 명소.이곳을 창건한 의상스님도 여기에 소원을 빌어 성취했다 전해진다. 삼족섬에게 전했던 소원을 다시 한 번 바다를 향해 빌어본다. 그러다 문득 벼랑 끝에 서 있는데 못 할 일이 없겠다는 용기가 생긴다. 홍련암이 주는 깨달음과 용기. 어쩌면 그 힘이 스스로의 꿈과 소원을 이루게 하는 건 아닐까.
강현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