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를 겸비하고 왜구와 홍건적을 격퇴한 고려시대 조인벽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한 곳으로 현재는 조인벽과 넷째아들인 충효의 상징 조사를 배향하고 있다
지방교육의 역할을 담당했던 동명서원은 1787년 전란으로 전소 복원, 1868년 흥선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허물어졌다가 1982년 다시 복원하여 세워졌다.
현재 경내에는 3칸의 충현사, 6칸의 재실, 협문 등이 있으며 충현사에 조인벽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남아있는 유물로는 서원유허비와 동명서원중건비, 동명서원중수기, 동명서원봉안문이 있다.
무신 조인벽을 기리며
고려시대 무신 양렬(襄烈) 조인벽.
1372년 왜구를 대파해 봉익대부 자리에 오른 그는 1375년에도 왜구를 토벌하며 명성을 드높였다.
1377년에는 화포를 사용해 수군을 훈련시켰고, 1380년 강릉도상원구 자리에 올라 다시 한 번 왜구 격퇴에 큰 공훈을 세운다.
이후 승승장구하며 기세를 펼치다 1388년 태조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에 가담. 2등공신으로 기록 되었다.
양렬이란 호에 담긴 뜻처럼 의리 있는 조력자로 생을 다한 조인벽 선생.
관직을 벗은 후에는 양양에서 후생 양성에 전력을 다했고, 이후 그의 뜻을 기리는 유생들이 모여 세운 것이 동명서원이다.
현재 조인벽 선생의 묘는 이북에 있어 양양에서는 위패만 모시만 있지만, 통일이 되면 후손들의 마음을 꼭 조인벽의 혼이 있는 곳으로 전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