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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빚어낸 12가지 선물, 양양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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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하는 전통문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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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하는 전통문화여행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양양의 멋을 찾아서...

양양은 오랜 역사와 전통 을 간직한 고장이다.
양양은 신석기 시대의 선사유적을 간직한 곳으로 8,000년의 역사 를 자랑한다.
양양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고고한 기품이 서린 문화유산과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전통문화가 남아 있어 찬찬히 둘러볼수록 여행의 묘미가 더해지는 고장이다.

1일차

오래된 강원도의 전통가옥과 사찰의 흔적을 찾아서…
사람의 목숨은 백년이 채 안되지만, 사람이 만들어낸 것들은 대물림되면서 수백 년의 긴 생명력을 이어간다. 오래된 것들은 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고, 그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와 사람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양양의 옛 가옥은 지금도 사람이 살아가는 소중한 문화유산이고, 진전사지에 남은 삼층석탑과 부도는 천 년이 넘는 오랜 세월을 이겨내고 오롯이 서 있다.

교통편

동해고속도로 현남IC → 양양 방면 7번 국도(좌회전) → 광진삼거리(포매리 방면 좌회전)→ 포매리 백로·왜가리 서식지, 조규승가옥 → 광진삼거리(양양 방면 7번국도 좌회전) → 양양삼거리(인제 방면 44번 국도 좌회전) → 임천교차로(인제 방면 44번 국도 우회전) → 수상교차로(장승리, 수상리방면 우측방향) → 들돌길 → 이두형가옥 → 거마천로(좌회전) → 대문터길(좌회전) → 석교교 건너 좌회전 → 진전사지

포매리 백로와 왜가리 번식지와 조규승가옥

양양의 포매리에는 옛 전통가옥과 천연기념물이 어우러진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조규승가옥과 어우러진 백로와 왜가리 번식지가 그 곳이다. 푸른 바다와 나란하게 이어진 7번 국도를 따라가다 포매리 방면으로 들어서면 동해안 석호중 하나인 포매호가 먼저 눈에 띈다.
백로와 왜가리는 여름 철새로 알려져 있지만, 일부는 텃새화되고 있는 조류다. 포매리에 서식하는 백로와 왜가리는 조규승가옥 뒤편의 울창한 송림에 둥지를 틀고 번식한다. 백로와 왜가리의 번식지가 된 송림은 70∼150년 정도 된 소나무 숲으로 오래된 고택과 조화롭게 어울린다. 백로와 왜가리가 찾아드는 4, 5월이면 송림 위로 유유히 날아다니는 백로와 왜가리 뿐 아니라 둥지 위의 귀여운 새끼들 모습을 볼 수 있다. 천연기념물이 지정될 당시인 1970년대만 하더라도 2천 마리가 넘게 날아와 장관을 이뤘다고 하는데, 지금은 찾아오는 개체수가 많이 줄었다. 포매리 백로와 왜가리 번식지는 동해안 최대 번식지로 천연기념물 제 229호로 지정되어 있다.
송림과 어우러진 조규승가옥은 안채, 사랑채, 곳간채로 구성되어있고, ‘ㅁ’형으로 지어졌다. 300여 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행랑채는 따로 없고 안채와 사랑채로 이루어진 건물인데 대문을 기준으로 왼쪽으로는 부엌이 문 앞쪽으로 튀어나와 있고, 오른쪽으로는 연이은 방 3개, 누마루, 창고로 나뉘어져 있다. 사랑채는 방을 3개를 만들고 특이하게 앞으로 툇마루를 내었고, 맨 끝으로는 누마루 형태로 건물을 올렸다. 조규승가옥은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80호로 지정되어 있고, 안채에는 현재 사람이 살고 있어 둘러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의를 지켜야 한다.

이용안내

위치 :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포매리 106-1
이용료 :
무료(주차는 조규승 가옥 앞 공터에 잠시 주차할 수있다.)

진전사지 삼층석탑과 부도

진전사지는 통일신라시대에 도의선사가 세운 진전사의 옛 터다. 절터 주변에서 ‘진전(陳田)’이라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절의 이름이 밝혀졌다. 언제 폐사됐는지는 모르지만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도 이곳에서 출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절터였음을 알려주는 몇 몇 석물만 남은 쓸쓸한 절터지만, 진전사는 천 년이넘는 역사 뿐 아니라 시대적 의미를 새겨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진전사를 창건한 도의선사는 교종 불교가 지배하던 통일신라에 선종을 최초로 전한 인물이다. 도의선사가 교종으로부터 배척을 받고 은신한 곳이 바로 진전사였다.
진전사지는 우람한 설악산 자락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근래 진전사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다시 복원되었다. 진전사의 옛 터에는 진전사지 삼층석탑과 부도 한 기가 남아 있다. 둔전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넓은 터에 삼층석탑 한 기가 단정하게 서 있다. 벚나무 사이로 난 계단 끄트머리에 삼층석탑이 언뜻 보인다. 까무잡잡한 화강암으로 만든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석탑의 기단과 1층 몸돌에 새겨진 문양이 매우 화려하다. 특히 상층기단에 새겨진 팔부중신상과 1층 몸돌의 사방불은 두툼하게 조각되어 있어 입체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진전사지 삼층석탑은 국보 제 122호로 지정되어 있고,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 가운데 백미로 손꼽히는 대표적인 석탑이다.
보물 제439호로 지정된 부도는 새로 지어진 진전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소나무 숲 한가운데 서 있는 부도는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석탑과 부도를 섞어놓은 것처럼 아랫부분은 석탑의 기단을 닮았고, 윗부분은 부도의 모습을 닮았다. 진전사지 부도는 도의선사의 부도로 추정되는데, 우리나라 부도의 시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용안내

위치 :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 100-2
이용기간 :
연중무휴
이용료 :
무료
주차 :
무료(주차는 삼층석탑 앞도로와 진전사 경내에 잠시 주차할 수 있다.)

여행팁

진전사지까지 이어진 둔전계곡은 여름이면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진전사의 일주문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대문터라 불리는 석교리에는 마을에서 관리하는 휴양지를 운영하고 있다. 석교리에서는 떡메치기, 메밀국수 만들기 등 체험이 가능하고, 물놀이도 즐길 수 있는 휴양지다.(양양군 농산어촌체험마을 홈페이지http://agritour.yangyang.go.kr) 진전사지에서 물치항 방면으로 나가다보면 만나는 장산리에는 막국수촌이 형성되어 있어 강원도의 별미를 맛볼 수 있다.

2일차

옛 영동의 중심지, 양양의 흔적을 찾아서…
양양은 조선시대 때 원주와 양양을 합친 원양도 혹은 강릉과 양양을 합친 강양도로 불린 적이 있을 만큼 영동의 중심지였다. 고려시대에는 양주군이었다가 조선이 개국하면서 태조의 고조부 목조의 외향이라고 해서 양주부로 승격됐고, 태종 때부터는 양양도호부가 된 큰 고을이었다. 옛 영동의 중심지에는 어떤 흔적들이 남아 있을까? 그 흔적을 찾아 떠나보자.

교통편

동해신묘 → 7번 국도 강릉 방면 좌회전 → 양양5일장 → 인제 방면 44번 국도(거마천로 우회전) → 양양향교

양양동해신묘지

동해신묘는 낙산도립공원에 인접해 있는 양양읍 조산리에 있다. 동해신묘는 동해 용왕신을 모신 사당으로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국태민안과 풍농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올리던 곳이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동해는 양양, 남해는 나주, 서해는 풍천에 각각신묘를 세우고 제를 올렸는데, 왕실에서는 직접 향과 축문을 내려 보냈다. 동해신묘는 고려 공민왕 때인 1370년 강릉 안인포에 세워졌다가 조선 성종 때 수군만호영이 양양으로 이전하면서 함께 옮겨왔다. 조선 후기 들어 두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고, 정조 24년 관찰사 남공철과 어사 권준의 요청으로 중수할 때 동해신묘중수기사 비를 세웠다. 일제강점기 때 민족문화 말살정책으로 완전히 철폐되 었는데, 당시 일본의 사주를 받은 양양군수 최종락이 동해묘의 신위를 신묘 뒤편에 묻어버리고, 동해신묘중수기사비가 잘리는 비운을 겪었다. 동해신묘중수기사비는 복원된 정전 건물 뒤편에 잘린 흔적을 간직한 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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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안내

위치 :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조산리 339-1
이용기간 :
연중무휴
이용료 :
무료(주차료와 입장료가 따로없다. 주차는 동해신묘 주변에 잠시 주차할 수 있다.)

양양5일장

양양5일장은 양양읍내에서 매 4일과 9일에 열리는 재래장터로 남대천과 인접한 남문리 일대에서 열린다. 5일장은 조선시대 때부터 내려온 오래된 전통문화다. 옛 정취가 그대로 묻어나는 5일장은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볼거리 가득한 민속전시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 아침부터 5일장을 찾은 상인들은 자리를 잡고 장사할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상인들은 양양군 곳곳에서 온 사람들부터 강원도 여러 장터를 돌아다니며 장사하는 사람도 많다. 양양군 곳곳에서 온 사람들은 일명 신토불이 장터라 불리는 길 위로 늘어선 연세 많은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할머니들은 자신이 직접키운 농작물을 가지고 나오는 게 전부다. 옥수수, 감자, 풋고추 등 제철 채소와 과일이 소담스럽게 쌓여 있고, 논에서 직접 잡은 우렁이도 빨간 대야에 가득 담겨 있다. 대야에서 나와 느릿느릿 탈출하는 논우렁이 한 마리가 웃음을 전해준다. 외지를 떠돌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성격이 좋다. 여러 시장의 텃새에 적응을 해야 했기 때문에 대체로 이야기도 잘 받아준다. 멀리 동해의 북평장, 태백의 통리장, 심지어는 경상도 울진까지 돌며 장사를 한다하니 놀랍기도 하다. 어묵 하나, 커피 한 잔 마시며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 는 것도 5일장의 묘미다.

이용안내

위치 :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남문리 일원
전화 :
033-671-2878, (양양시장 번영회)
이용기간 :
매월 4, 9, 14, 19, 24, 29일
주차 :
남대천변 무료주차장

양양향교

향교는 고려, 조선시대의 국립교육기관이다. 고려시대 때는 향학이라 불렀고, 부·목·군·현 단위로 지방민을 교육하고, 문묘에 위패를 봉안하고 제를 올리는 역할을 했다. 양양향교는 창건시기가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도에서 고려시대 때 창건한 향교는 강릉향교와 함께 양양향교가 유일하다. 고려 충혜왕 때 강원도 존무사(存撫使)였던 안축이 문선왕동(文宣王洞)이 옛 학교 터였음을 전해 듣고 그곳을 향교 건립지로 설정하여, 양양태수로 부임한 정랑과 함께 창건했다. 양양향교의 창건에 대한 내용은 근재 안축의 근재선생문집 가운데 양양신학기라는 글에 나온다. 홍살문을 지나 높은 계단을 오르면 굵은 글씨체의 명륜당 현판이 눈에 먼저 들어오고 석축 위로 앉아 있는 명륜당 건물 아래로 향교 내부로 들어가도록 만든 것이 꽤 이채롭다. 양양향교는 학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과 함께 학생들이 기거하던 동재와 서재가 앞서고,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함께 동무와 서무가 뒤에 있어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구조를 보인다. 양양향교는 한국전쟁 때 소실된 뒤 다시 지어졌고, 문화재자료 제 10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용안내

위치 :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거마천로 52-20
이용기간 :
연중무휴
이용료 :
무료
주차 :
향교 앞 공터

여행팁

도심 속에서 즐기는 삼림욕, 모노골산림욕장
도심 속 산림휴양공간인 모노골산림욕장은 양양향교 뒤편에서 관동대 양양캠퍼스 뒷산, 모노골약수터, 숲가꾸기 산물처리장을 잇는 4.8㎞ 산책로로 이뤄져 있다. 각 구간에는 데크로드와 자연목교, 숲속교실, 산림욕대, 태양광가로등, 체육시설 등이 설치돼 있으며, 전 구간은 자연경관을 최대한 살린 자연친 화적 산림휴양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특히 물맛 좋기로 소문난 모노골약수터에는 캐노피시설과 휴게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궂은 날씨에도 불편없이 약수터를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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